우연히 발견한 책인데 책의 내용이 흥미로워서 단숨에 읽었다.
원제는 'The Surrender Experiment'인데 번역은 '될 일은 된다'이다.
너무 비약이 심한 게 아닐까?
이런 내용이다.
삶이 있는데 삶은 우리 개개인 자신보다 더 뛰어나다.
(온 우주를 관장하고 등등)
그러니 선택의 길목에서 자기의 좋아함과 싫어함에 기초하여
좋아함을 좇아서 살기 보다 삶이 내미는 손길에 순종하여 승복하며
사는 게 더 나은 삶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자신이 그렇게 살아왔고 자신이 생각지도 못하게 놀라운
일이 자기의 삶에 펼쳐졌음을 저자는 고백하고 있다.
더 뛰어난 지성이 있다면 그리고 그 지성이 나에게 좋은 것을 준비하고 있는 게
맞다면, 당연히 나의 순간적인 판단보다 그 뛰어난 지성을 따르는 게 더 합리적인
선택일 것이다.
그런데... 몇 가지 의문도 든다.
이미 일어난 일(내가 선택할 수 없는 일)과 일어나고 있는 일(내가 관여할 수 있는 일)
을 구분해 보자.
저자는 실제로 이 두 가지를 뭉뚱그려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건 구분할 수
있는 일이다.
1. 이미 우리 집에 불이 난 상황
2. 앞차가 지나치게 천천히 가고 있는 상황
3. 우리 집 부지에 누군가가 집을 짓고 있는 상황
저자의 유튜브 방송을 들어보면 이미 일어난 reality에 대하여 나의 여러 가지 반응이 올라올 때
그것을 let go하는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외부 현실을 바꾸려 하기보다 내면의 let go를 계속 연습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미 일어난 일은 삶이 주는 것인가? 이런 의문이 들고.
두 번째. 위 1번은 이미 일어난 일이 명확하다.
그런데 위 2번은 이미 일어난 일인가? 내가 추월할 수도 있고, 앞차를 뒤에서 박을 수도 있고,
어떻게든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나에게 있다. 그런데 이것을 이미 일어난 일이라고
할 수 있나?
세 번째. 저자는 책에서 위 3번의 예를 들고 있다. 즉, 자신의 집 부지에 누군가가 집을 짓고
있길래 처음에는 황당한 생각이 들었는데 순종하는 마음으로 오히려 집을 짓는 것을
도와주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사람이 집을 짓고 있는 것은 삶이 시킨 것인가?
즉, 정리해보면
1. 이미 결정적으로 일어난 일은 삶이 주는 것인가?
2. 결정적이지 않고, 나의 선택에 따라 변화 가능한 일이 있을 때
이미 발생하고 있는 일은 삶이 주는 것이기에 나는 저항하지 않아야 하나?
마이클 싱어에게 묻고 싶다.
머리가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머리 안에 작은 혹이 있다고 한다.
10분 정도 시술을 해서 떼어 내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그대로 두면 암으로 전개된다고 한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나?
삶이 나에게 혹을 선사했으니 감사하는 마음으로 시술을 하지 않고
암으로 전개되도록 내버려 둔 후 곧 죽어야 하나?
싱어는 당연히 아니라고 말할 것 같다.(아닌가?)
만일 그가 당연히 간단한 시술을 해서 혹을 떼어 내야 한다고 말을 한다면
과연 주위에 발생한 일이 삶이 주는 메시지인지 아닌지는 누가 판단을
하고 있는지 되물어보고 싶다.
결국 이 또한 무조건적인 항복이 아닌 선택적 항복이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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