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일기

[영화 브로커, 기승전결의 종말]

비평의 눈 2022. 6. 16. 07:47

아기를 키울 수 없어 교회에서 운영하는 베이비박스 앞에 아기를 두는

장면에서 영화는 시작한다.

그 아기를 가로채어 팔려는 사람들, 그리고 여기에 동행하는 아기의 엄마.

 

돈이 필요해 아기를 팔아야 하는 현실 앞에서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돈이 되면 무엇이든 하고자 하는 현실인 만큼 이 웃음은 이내 섬뜩함으로 변한다.

 

일본 감독(고레에다 히로카츠)의 작품이여서 그런지, 영화는 시종일관 잔잔하다.

남해 또는 서해 바다의 파도 같다.

 

나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

그냥 다른 감독들의 영화들과 영화 형식이 다른 게 좋다.

홍 감독의 영화 형식이란 한마디로 말해 기승전결이 없는 영화이다.

결론이 없고 감독이 특별히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없다.

(어쩌면 메시지가 있는 데 관객들이 특별히 눈치채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

 

이런 점에서 브로커는 홍상수의 영화와 닮아 있다.

 

기승전결은 영화에 흥미를 부여하는 중요한 장치이다.

철저한 설정으로 관객들을 절정을 향해 몰아가고,

관객들은 터져나오는 결론에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러므로 기승전결의 포기는 대단한 용기다.

 

현실이 애매하고 모호하고 복잡하기만 한데

영화라도 명확한 게 사람들에게 위로로 작용할까?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기승전결을 포기한 영화는

현실의 낮은 자세로 내려와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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