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일기

small talk와 영국인, 그리고 강대국

비평의 눈 2023. 8. 20. 18:38

이곳 맨체스터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어떤 분의 블로그에서

영국인들이 small talk를 즐긴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예를 들어, 회의 시간이 되면 바로 회의를 시작하기보다 이 얘기, 저 얘기 등

회의와 관련이 없는 얘기들을 주로 하면서 회의가 괜히 길어진다는 것이다.

회의가 끝나도 자기 자리로 돌아가기 보다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나간다.

이 분의 와이프가 영국 사람인 것 같은데 그분 말에 따르면 와이프에게 

왜 영국인들은 small talk를 많이 하느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은

그게 '예의 바른 것'이라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구글에서 검색해 보니 이렇게 small talk를 정의 내린 부분이 있었다.

 

"Small talk refers to an informal, polite conversation that often focuses on unimportant or trivial topics."

 

polite conversation이라니.

 

그러고보니 카페를 가더라도 종업원들끼리 항상 이 얘기, 저 얘기를 하고 

도서관을 가더라도, 어디를 가더라도 자기들끼리 얘기를 하고 있었다.

야외 공간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우리나라 관점에서 보면 '일은 안 하고, 맨날 잡담만 하고, 놀고 있는' 전형인데 말이다.

 

만일 small talk를 즐기는 게 영국인들의 기원을 이루는 앵글로색슨 족의 특성이라고

거칠게 전제하는 게 가능하다면,

한 때 세계를 제패했던 영국, 그리고 마찬가지로 앵글로색슨 족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현재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과 small talk와의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다시 말해, small talk를 즐기는 민족적 특성이 어떤 국가가 강대국이 되는데 기여한

측면이 있지 않을까?

 

유발 하라리가 그의 책에서 말했던 것 같다. 

다른 종들은 모두 멸종했지만 현재 호모 사피엔스만 살아남은 이유는 이들에게는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

즉,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은 정보를 공유하고 교환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를 통해

외부 침입을 미연에 방지하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앵글로 색슨족도 한국 사람이 보기에 일에 집중하지 않는 것 같고, 효율적으로

일처리를 하지 않는 것 같고 하지만,

끊임없이 small talk를 통해 서로를 좀 더 이해하고 정보를 공유하고 재생산하면서

우리가 생각지 못한 새로운 방식으로 업무 효율성을 추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어쩌면 중국인들도 마찬가지일지 모르겠다.

세계의 강대국으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

우리는 그들을 보며 시끄럽다, 말이 많다고 하지만 그들도 앵글로색슨 족 못지않게

small talk에 일가견이 있는지 모르겠다.

세계 어떤 도시를 가더라도 극히 작은 도시가 아니면 차이나타운은 다 있는데

그렇게 차이나타운을 형성해 본인들끼리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있는 중국.

우리나라 사람은 해외에 나가면 한국인들을 안 만나려 하고 따라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은데

중국인들은 그들만의 본거지를 형성해 어떻게든 정보를 공유하고 재생산하고 있는 것일지도.

 

small talk는 강대국이 되는 발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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