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있을 때는 다들 외국 나가서 석박사 학위 따고 오길래
가면 그렇게 쉽게 학위 받아서 오나 싶었다.
이게 '수(number)의 착각'일지도 모르겠는데
예를 들어 전 세계에 몇 안 되는 보석은 몇 개 없다 보니 귀하게 느껴지고
여기저기서 쉽게 볼 수 있는 보석은 덜 귀하고, 덜 귀하게 느껴지니 쉽게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유학 갔다 온 사람들을 쉽게 접하다 보니 아무튼 유학이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었나 보다.
그런데 막상 와서 느끼는 것은 '여행이랑 다르다'이다.
여행은 그 목적도 '즐김'이지만 여행을 여행이게 만드는 주요 동력은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이 가능해지는 시스템에 있다.
(물론 숙박을 예약하거나 식당을 알아보는 작은 수고를 해야 하긴 하다.)
그런데 유학은 다르다. 외국어로 공부도 해야 하지만 상당히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
행위들이 펼쳐져 있다.
며칠 머무는 숙박이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구한 곳이어도 며칠 참으면
그만이지만 몇 년씩 살아야 하는 집은 그렇지 않다. 신중하게 따져봐야 하는데
한국도 아닌 외국에서 신중하게 살펴보기가 쉽지 않다.
집을 계약할 때의 생소한 시스템은 말할 필요도 없다.
뿐만 아니라 전기요금, 수도요금 등을 알아보고 납부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외국이다 보니 좀 더 따져보게 되는데 적절하게 청구가 되었는지 등등도
의심스럽고, 의문점이 생겨 고객센터에 전화라도 하면 빠른 외국어가 들리기 마련이다.
해외여행하는 사람들은 집계약, 전기요금, 수도요금 등을 고민하지 않으니 이것만으로도 천국이다.
영국은 물론 선진국이다. 그렇게 배웠고 그렇다고 믿는다.
(일단 미국 다음으로 세계랭킹 대학이 많으니 이곳 영국의 대학에서 분명
보고 배울 것은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행정처리나 이런 시스템은 한국과 좀 다르다.
우리는 좀 정확하게, 빨리빨리 하려는 경향이 있고 민원 소지를 줄이기 위해
노력을 많이 기울이는데
이곳은 야근을 안 하고 다들 좀 느긋하고 급할 게 없는 것 같다.
내가 뭔가 문의를 했는데 진행이 되고 있는지 아닌지 쉽게 확인이 안 된다.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하기 전인데 이러한 생활 이슈가 힘을 뻬게 한다.
그래서 정말 1년이든, 2년이든 유학생활을 하고(학위를 딴 사람은 더더욱)
돌아온 사람들이 존경스러워진다.
외국을 좋아하는 것과 외국여행을 좋아하는 것은 다르고,
외국여행을 좋아하는 것과 외국에서 생활하는 것은 또 다르다.
나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외국여행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외국에서 생활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처럼 착각하기 쉽지만 생활해 보니 그렇지 않다.
유학 오기 전에도 머릿속으로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지 않다'를 몸소 체험하는 요즘이다.
'유학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6주간의 어학수업이 끝이 났다. (0) | 2023.09.08 |
---|---|
당신은 커피를 좋아하시나요? (Just Between Friends 방문기) (0) | 2023.09.07 |
차이를 아는 능력 (맨체스터 JAFFA 방문기) (0) | 2023.09.04 |
맨체스터 코레아나 한식당 방문기 (0) | 2023.09.03 |
무료 생리대 (0) | 2023.09.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