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위작의 기술, 노아 차니 / 학고재]

비평의 눈 2022. 7. 23. 15:57

맺음말 한 문장이 인상적이다.

'위조꾼은 대체로 실패한 미술가들이다'

이 말에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어설프게 '위조 작가들 중 일부는 돈과 명예를 누리기도 했어' 식으로 넘어가는 것보다 낫다.
사실 위조 작가들에게 마이크를 대고 '당신의 미술 인생은 성공했나요?'라고 질문을 한다면
어떤 대답이 돌아올까?
'저는 실패한 미술 인생입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올 것 같다.
그들은 피카소, 렘브란트, 고흐, 살바도르 달리가 되고 싶었으니까.
그들처럼 자기 이름을 걸고 자기 실력을 보여 명성을 얻고 싶었으니까.

궁금해진다. 피카소, 렘브란트 등을 '진작(위조작의 반대)가'로 부른다면,
진자가와 위조작가의 실력 차이는 어느 정도일까?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수준 차이일까? 아니면 엇비슷할까?
만일 엇비슷하다면 왜 누구는 진작가가 되고 누구는 위조작가가 되는 것일까?
실력 차이는 크지 않지만 그 시대, 그 문화와 본인의 화풍이 우연찮게 맞아서
빛을 발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하기도 하는 것일까?

순전히 돈을 노리고 완전한 위조를 꿈꾼 이야기는 흥미로웠지만,
나중에 위조 작으로 드러날 것을 노리고 은근슬쩍 위조의 단서를 끼워 넣은
이야기는 안쓰러웠다.
왜 위조의 단서를 숨겨 놓았을까?
위조의 단서를 숨겨놓으면 처음에는 위조작이 아닌 진작으로 인정이 되어
유통되지만 추후 눈밝은 사람들에 의해 위조작으로 밝혀지기 마련이다.
위작을 샀던 미술관들은 처음에는 자기들이 속아 넘어간 것을 인정하기가
어려워 구입한 그림이 위작임을 부인하지만 명확한 위조의 단서 앞에서는
아래와 같이 고백하기 마련이다.

'이게 위조작이라고? 세상에... 이렇게 실력 있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작가가
있었어? 깜빡 속았구만...'

이렇듯 자신의 실력을 인정해 주지 않는 기존 미술계에 한 방을 먹일 생각으로,
본인의 실력을 세상에 드러내면서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으로 위조 작가들은
나중에 위조로 드러나기를 은근히 기대하기도 한다.
비록 나중에 처벌을 받더라도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특정 분야에 전문가가 되기 위해 그래서 세상의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명성은 몇몇 사람에게만 돌아가는 것 같고 우리는 여전히 수면 위로
올라가지 못하는 미생의 삶을 살고 있다.
인생이 너무 짧은 걸까? 100년의 시간은 한 사람의 인생이 꽃을 피우기에 너무 짧은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미 꽃은 폈지만 그것을 알아보는 사람이 적을는지도 모르는 일.
그래서 위조 작가들은 다른 사람이 피운 꽃을 보며 조급한 마음에 생계의 고단함으로
위작의 붓을 들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작은 연민의 손을 내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