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달 너머로 달리는 말, 김훈 / 파람북]

비평의 눈 2022. 9. 26. 08:31

책을 읽고 이 소설의 주인공이 누구였는지 생각했다.

책 앞머리 제목을 들쳐보고서 사람이 아닌 말이었음을 알았다.

 

김훈의 소설은 인생을 객관적으로 보게 도와주는 듯 하다.

객관적이란 표현이 적절하지 않다는 느낌이 있지만..

여기서 객관적이란 나를 포함하여 세상을 보는 관점을

순간적으로 Zoom-out 시켜서 세상과 관점과의 거리를

확보하게 한다는 뜻이다.

초나라와 단나라의 소멸은 나의 소멸(죽음), 나의 세계의 소멸,

나의 가족의 소멸, 나아가 지구의 소멸로 이어진다.

결국 모든 것은 사라지는데 초와 단의 소멸을 선제적으로

소설은 보여준다.

 

재미있는 대목이 몇 가지 있다.

김훈은 초와 단의 특징을 대비시키는데

초는 말(言)의 사용을 경계한다. 말은 현실에 뿌리내리게 하기보다

사람을 붕뜨게 만들며 허공을 떠돌게 한다.

그리고 초는 '쌓는 것'을 경계한다. 돌로 쌓은 성이 없으며 자연에서

자연스럽게 기거하며 생활한다. 단에 비해 자연지향적이다.

군대는 단일한 체계가 있기보다 자연스러운 느슨함을

강조한다. 왕권이 미치기 어려운 멀리 있는 지역을 굳이 확고한 체계

안으로 편입시키려 하지 않는다.

이에 반해 단은 좀 더 문명사회(?)에 가까운 모습니다.

성을 쌓아 왕을 보호하고 언어를 사용하여 기록을 남긴다.

 

김훈이 여러 동물 중 왜 말을 주인공으로 삼았는지 모르겠지만

언어로서의 말과 같은 단어를 사용하는 짐승이다 보니 그랬던 게 아닌 가 싶다.

 

소설에서 말(동물)의 묘사도 흥미롭다.

말은 그저 사람을 태우고 물건을 나르는 동물이 아니다. (부수적이지 않음)

사람처럼 생각하며 고민하며 사랑을 나눈다.

(말 총총과 사람 요의 사랑, 말 야백과 말 토하의 사랑)

 

소설을 다 읽고 난 느낌은 김훈의 표현대로 아득함. 먹먹함이다.

복잡한 한 세상이 지나고 나서 자연으로 돌아간 소설의 풍경을 보며

우리 인간사의 현실이 대비된다.

 

아래 몇 가지 인상 깊었던 장면을 옮겨 적어본다.

 

'살아 있는 동안에 사람을 낳은 사람의 자식이고 부모지만

죽으면 인연은 흩어지고 혈연은 풀려서 뿔뿔이 흩어져 제자리로

돌아가게 되므로 누구나 누구의 자식도 부모도 아니며,

형태도 없고 무게도 없고 그림자도 없는 바람이 되어 백산으로 들어가고,

인간 세상에는 그 인연 없는 자리에서 새로운 사람들이 태어난다고 월나라

사람들은 대를 이어서 이야기를 전했다.'(174p 중)

 

'- 너는 무얼 하며 소일하느냐?

 - 나는 소일하지 않는다. 나는 시간과 더불어 흘러간다.'(199p 중)

 

'야백이 머뭇거리면서 토하에게 다가왔다. 낯설었으나 남은 아닌 것

같았다. 너도 아니고 그도 아닌 말이었다.'(260p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