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사건이 일어나면 경찰은 범죄를 조사하며 원인 파악에 나선다.
현재, 원인 파악은 두 가지 이유에서 필요하다.
하나는 범죄의 원인이 무엇인지에 따라 적용하는 죄목이 달라지기 때문이며
다른 하나는 향후 범죄를 줄일 수 있는 적절한 대책을 세우는데 필요하기 때문이다.
후자의 목적이라면 원인 파악은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데 전자의 경우라면 사정은 좀 다르다.
살인죄를 규정하고 있는 우리나라 형법 제250조에 의하면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한다.
과실치사죄를 규정하고 제267조를 보면
과실로 인하여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자는 2년 이하의 금고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한다.
살인죄가 형벌이 더 무거운 이유는 일부러(고의로) 사람을 죽인 것이기 때문에
더 못된 범죄라는 것이다.
대신 예를 들어 공사장에서 모르고 물건을 떨어뜨려 지나가는 행인이 맞아서
사망한 경우는 고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피해자나 유가족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사람이 죽은 것은 매 한가지이다.
칼에 찔려 죽었든 떨어지는 물건에 맞아 죽었든 사망이라는 동일한
결론에 이른다.
떨어지는 물건에 맞아 죽은 사람의 유가족이 '그래도 원한 관계 때문에
두드려 맞아 죽지 않은 것은 다행이다' 라고 말할 일도 없다.
사람이 죽었고 이 죽음이라는 결론에 영향을 미친 사람이 누군지도
밝혀졌는데
고의가 있었느냐 없었느냐에 따라 처벌이 달라지므로 경찰은 범죄의
원인(여기서는 고의성 여부)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칼에 힘을 주어 상대방을 찌른 것인지 그냥 칼을 들고만 있었는데
상대방이 칼 위로 넘어진 것인지,
실수로 물건을 떨어 뜨린 것인지 묻지마 범죄처럼 아무나 죽었으면
하는 마음에 일부로 물건을 떨어뜨린 것인지.
고의라는 것은 사람의 내면의 의사인데 어쩌면 행위자 자신도
당시에 고의의 '마음' 이 있었는지 헷갈리는 상황에서
제삼자들이 나서서 이것저것 상황을 맞춰가며 고의 여부를 추정해 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범죄 이론들도 복잡해지고 범죄 행위자 자신도
제삼자들(경찰, 검찰, 법원..)이 내린 결론에 쉽게 승복하지 못한다.
범죄학이 너무 과도하게 범죄 원인 파악에 골몰하며 적절하지 않은
이론들을 생산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다.
결과가 동일하다면 원인 제공자에게 동일한 처벌을 내리는 게 피해자
중심의 형사정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즉, 경찰은 행위자와 범죄 행위와의 인과관계만 파악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의 내면을 제삼자들이 판단해야 하는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고
범죄학 연구도 좀 더 단순하며 명료해질 것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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