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일기

진정한 '나'는 '알아차림'이다? (1)

비평의 눈 2024. 8. 28. 10:26

유튜브에서 김주환이라는 분의 '진짜 나는 알아차림이다'라는 영상을 보았습니다.

나의 이름, 직업 등 흔히 '나'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진짜 나가 아니고, 

진짜 나는 '알아차리는 주체', '인식 주체'라고 하네요.

 

특별한 내용은 아닙니다. 

 

몇십 년 전부터 '에크하르트 톨레'가 그의 책에서 여러 강연에서 누누이 했던 내용이에요.

새로울 게 전혀 없는 내용입니다. 

 

예전에 저도 이런 류의 가르침에 혹 했습니다. 

그렇구나. 그동안 진정한 내가 아닌 것에 내가 큰 의미를 부여하며 살았구나.

변하지 않는 진정한 나는 알아차림이구나.

내 안에 발생하는 일들을 조용히 인식하며 지켜봐야겠구나.

 

그런데요. 함 생각해 보자고요. 

 

나의 이름? 물론 바꿀 수 있습니다. 

나의 직업? 바꿀 수 있습니다.

나의 주민등록번호? 물론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분초 단위로 바꾸시나요?

 

찾아보니 김주환 씨는 1964년 생이라고 하네요. 그럼 지금 60세 정도 되었는데요.

그가 태어날 때도 이름이 김주환이었는지 다른 이름이었는지는 모르겠는데

특별히 개명 했다는 말은 없으니까요.

거의 60년간 김주환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살았을 텐데요.

 

누가 김주환씨를 보고 김석기 씨라고 부르면 반응하지 않았을 겁니다. 

다른 사람을 부르는 구나라고 생각했겠지요.

누가 김주환이라고 불러야 자기 자신을 부르는구나라고 생각하며 반응을 했겠지요.

김석기라고 부르면 반응을 하지 않고 김주환이라고 부를 때 반응을 해야 사회생활이 가능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학교도 못 다니고 병원도 못 다닙니다. 

 

물론 이름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문제는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60년간 한번도 이름을 바꾸지 않고 그 이름을 사용하여

살아왔다는 것이에요. 

갓 태어났을 때는 부모가 너 김주환이야라고 해도 인식이 잘 안 되었을 텐데요. 

자라면서 주위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서 김주환이라는 이름을 얼마나 들었겠어요.

그것을 60년간 들었습니다. 누가 김주환이라고 하면 생각할 필요도 없이 몸이 자동으로 반응합니다. 

 

제가 어떤 말씀을 드리는지 아시겠어요?

오랫동안 같은 이름을 사용해 왔기 때문에 이제 이름은 특정 누군가의 '진짜 나'가 되었다는 말씀을 

드리는 게 아닙니다. 

'진짜 나'가 무엇인지 그것이 진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김주환이라는 이름은 그 오래된 생활의

경험 때문에 그의 몸에 하나의 정체성으로 아로새겨져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런 경험을 무시한 채 이름을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름을 자기 자신에서 순간순간 분리하고 떼어낼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이름은 바꿀 수 있고요. 따라서 우리는 이름을 그냥 사용하는 것이지 태어날 때부터 하늘에서 

부여된 이름은 없습니다. 그런데 한 이름을 50~60년간 사용하다 보면 

실제 생활에서는 그냥 여러 이름 중에 하나를 선택해서 사용하는 것이다라는 인식을 순간순간

가지기 어렵고 마치 태어날 때부터 하늘에서 부여받은 이름인 양 사용하게 된다는 것이고요.

그리고 이렇게 사람들이 느끼는 게 오히려 자연스럽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안의 고민과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진정한 나가 아닌 것을 구분해 보는 것은 

필요하지만 오래된 세월의 경험을 하루아침에 무시할 수가 없는데

'진정한 나가 아닌 것을 부여잡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괴로운 것입니다'라며

마치 쉽게 떼어낼 수 있는 것인 양 접근하는 해결책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지요.

 

한 때 큰 회사의 CEO였던 사람이 있습니다. 사업이 망해서 지금은 아니에요.

그런데 그는 과거 잘 나가던 시절을 떠올리며 괴로워하고 있어요.

그럼 그 사람에게 'CEO는 당신의 진정한 '나'가 아닙니다'라고 얘기하면 어떨까요?

틀린 얘기가 아닙니다. 태어날 때부터 CEO였던 사람이 있나요?

CEO는 하나의 직업이지 고유한 정체성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재기를 하고 싶어 합니다. CEO가 진짜 나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냥 회사를 꾸리며 일하고 싶거든요. 그런 탓할 수 없는 욕망 때문에 이 사람이 괴로워할 수도 

있는데, 'CEO는 당신의 진정한 나가 아닙니다'라고 한다면 '진정한 나가 아니니 CEO 하려고

애쓰지 마라'라는 말밖에 안 되지요.

 

CEO 하고 싶어 괴로운 사람한테 괴로움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은 CEO가 안되는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게 맞는 걸까요?

 

(진정한 '나'는 알아차림이다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 말씀드릴게요)